[기사]대상 노무법인 이은정 노무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사회적 함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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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1-02-18 16:58
대상 노무법인 이은정 노무사,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사회적 함의는?"
자산 가치의 상승으로 노동의 가치가 하락했다고 한들 직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진부하게는 자아실현의 장이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인간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사회적 소속감을 제공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이러한 직장의 본래적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채 매일 마주하며 업무를 함께하는 이들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괴롭힘 당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됐다. 사회적으로도 크게 화제가 됐던 일부 기업 오너들의 극단적 갑질 사례가 그 도입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나, 실제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은 극단적 사례뿐만 아니라 보다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포괄할 수 있도록 정의됐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보다 많은 행위를 포함시키고자 하는 입법 의도로 인해 그 정의 규정은 다소 모호하다.
[출처: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1708145956b]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도무지 괴롭힘이라고 불릴 수 없는 수준의 정당한 지시를 괴롭힘으로 규정하는 분들부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수준의 모욕적인 폭언을 참고 있는 경우까지 그 스펙트럼이 실로 다양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문제되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모호한 정의 규정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문제인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은 형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나 실질적으로는 타인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할 수 있는 행위가 오랜 시간 함께 있는 직장 내 관계의 특성상 지속적‧반복적으로, 또한 전 방위적으로 행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정의됐다. 다시 말해 형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영역의 행위를 근로기준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사측에 일정한 제재 의무까지 부과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받은 측과 괴롭힘을 주장하는 측 사이의 의견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괴롭힘 행위자로 지목받은 측에서 흔히 항변하는 것은 “나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 때는 워라밸이 뭐야, 상사 기분 맞추느라 회식 빠지는 건 상상도 못했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이기적인지 모르겠다”와 같은 일명 ‘라떼 훈수’에서부터 “너네 엄마 새엄마지?” 수준의 패륜적 발언 당사자까지 모두 입을 모아 자신의 무고한 ‘의도’에 대해 주장한다.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듣는 사람이 그것을 괴롭힘이라고 주장한다고 해 모든 발언 및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의 객관성은 담보돼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감수성은 점차 예민해지고 있으며, 직장과 인간관계에 대한 가치관이 급격하게 변화했고 또한 변화되고 있다.
임홍택 저자는 저서 <90년대 생이 온다>에서 90년대 생이 직장에 편입되며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도입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이러한 인식 변화, 높아진 인권 감수성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해 진실로 무고한, 악의 없는 무례함 또는 괴롭힘을 행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상 노무법인의 한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너무나 둔감한 이들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법’이라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라떼는 금지법’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여기서의 라떼는 흔히 말하는 꼰대들의 훈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 및 상황에 대한 몰이해와 그러한 무지에 대해 자각조차 못하는 이들의 좁은 세계관을 라떼라고 칭하고 싶다.
라떼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지면 필연적으로 경직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칭찬 한마디 조심해야 하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는 예민함이 지나쳐 오히려 관계 형성에 방해가 되는 정도의 경직된 사회가 올 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우리 사회를 보면 라떼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 대한 포용력보다는 그것이 라떼에 해당함을 일깨워줄 사회적 시그널이 보다 더 절실해 보인다. 이른바 ‘꼰대 논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구태여 별도의 사례를 제시하지도 않더라도 사회적 시그널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너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님을. 나의 의도한 바는 너의 받아들이는 바와 다를 수 있음을, 나 때는 그러했으나 이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는 이들이 보다 많아지기를 바라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그러한 인식 확산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출처: 머니투데이 고문순 기자, 글 이은정 공인노무사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21013260886611&typ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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