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끊이지 않는 쿠팡 직장내 괴롭힘] “당신 트렌스젠더인 거 다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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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2-05-03 09:23쿠팡물류센터 창원1센터에서 왓처(방역 감시)로 일하던 문영수(33·가명)씨는 5개월째 일을 쉬고 있다. 일터에서 발생한 직장내 괴롭힘 관련 산재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입사한 뒤 2주일 만에 일어난 직장내 괴롭힘은 외출을 꺼리게 될 정도로 문씨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관리자는 “인상이 안 좋다. 눈매가 날카롭다”며 문씨 외모를 지적하거나 신경질적으로 말하기 일쑤였다. 참다못한 문씨는 센터 책임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해당 관리자는 사과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 성소수자인 문씨에게 “당신이 트랜스젠더인 거 다 안다”고 말했다. 다음날부터 센터 내에 문씨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퍼졌고, 문씨는 본사에 직장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며칠 뒤 본사 관계자들은 조사에 나섰는데, 문씨는 “사건에 대해 발설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가해자인 관리자를 문씨와 분리한다거나, 문씨에게 유급휴가를 제안하는 조치는 없었다. 문씨는 “하루에도 회사에 수십통씩 전화를 걸어 가해자와 업무분리·유급휴가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피해 정도가 중하지 않아 유급휴가를 줄 수 없다’고 답했다”며 “노조에서 공문을 보내자 그제서야 회사는 1개월의 유급휴가를 줬다”고 주장했다. 문씨는 “이번 사건으로 상처를 많이 받아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크다”며 “피해자인 내가 6개월간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슬프다”고 토로했다.
노조활동 이유 괴롭힘 논란 잇따라
쿠팡에서 끊이지 않는 직장내 괴롭힘을 멈추기 위해 고용노동부가 쿠팡을 특별근로감독하고 실태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운수노조는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노동부 서울동부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물류센터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직장내 괴롭힘 사례를 폭로했다. 지난해에도 노조활동을 하는 조합원이 관리자에게 괴롭힘을 당해 노동부는 직장내 괴롭힘을 인정한 바 있다.
인천4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지난 2월 폭언을 경험했다. 관리자는 A씨에게 “한 번만 더 실수하면 손가락을 잘라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손가락을 깨물어 버리겠다” “노동조합 조끼가 싫다”는 말까지 했다. A씨는 회사에 신고했지만 사측은 직장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천1센터의 B씨는 지난 1월 노조활동을 하다 괴롭힘을 당했다. 퇴근시간에 피케팅을 하려고 다른 이들의 양해를 구해 퇴근줄 맨 앞쪽에 선 B씨에게 관리자가 “회사에서 허가하지 않는 사외 노조활동을 내가 왜 배려해야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 “다른 사람에게 동의를 구해 줄을 선 것”이라고 B씨가 항변했지만 “줄을 제대로 서지 않으면 매일 사실관계확인서(경위서)에 서명을 요구하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대표인 권영국 변호사(해우 법률사무소)는 “쿠팡은 직장내 괴롭힘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아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며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과 실태조사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측, 인권침해 아닌 조직갈등으로 치부”
쿠팡에서 계속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뭘까. 권오훈 직장갑질119 교육팀장은 “쿠팡이 직장내 괴롭힘을 조직갈등으로 치부한다”고 지적했다.
직장내 괴롭힘은 일터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다. 쿠팡 경영진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했다는 것은 경영진이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 것인데, 쿠팡 사측은 스스로를 조직갈등의 중재자로 설정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권 팀장은 “쿠팡이 노조를 직장내 괴롭힘 문제 해결 파트너로 적극 이용해야 하는데 노조에 대한 쿠팡 사측의 관점도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계속되는 하나의 원인”이라며 “노동부의 실태조사뿐만 아니라, 쿠팡 사측도 노조와 함께 인권침해 설문조사를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