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0세에 파킨슨병’ 반도체 노동자, 15년 만에 산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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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2-04-21 09:36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유해 화학물질에 노출돼 30대에 파킨슨병이 걸린 노동자가 최근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장에서 일한 지 27년 만이자 파킨슨병이 발병한 지 약 15년 만이다. 당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지만, 법원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 고농도 화학물질에 상당히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1990년대 중반 ‘포토공정’ 수행
3교대 근무하며 유해물질에 노출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단독(정성화 판사)은 지난 5일 전직 삼성전자 하청업체 직원 A(48)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고등학교 졸업 학기 무렵부터 삼성전자 부천공장에서 일했다. 1992년 12월부터 2년3개월간 반도체 생산직으로 근무하며 ‘포토공정’에서 노광작업을 수행했다. ‘포토공정’은 반도체 표면에 사진 인쇄 기술을 이용해 회로 패턴을 만들어 넣는 작업을 말한다. A씨는 공정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면 반도체 공정의 세척업무와 현상작업도 함께 담당했다. 1995년 3월 퇴사할 때까지 이와 같은 업무를 반복했다.
그런데 퇴사 이후 문제가 생겼다. 2004년 자녀를 출산한 지 석 달쯤 뒤 갑자기 왼쪽 손과 발에 마비 증세가 왔다. 이듬해 병원 검사를 받았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만 서른 살이 되던 2006년 11월 대학병원에서 파킨슨병 2기를 진단받았다. 파킨슨병의 평균 발병 연령인 50~60대보다 20년 이상 빨랐다. 파킨슨병은 통상 10년의 잠재기를 거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불승인 처분이 내려졌다. 방진복과 마스크를 착용해 직접적인 화학물질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다. 서른 살에 파킨슨병이 발병해 노출기간이 길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러자 A씨는 2020년 7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노출 기간과 정도가 쟁점으로 다퉈졌다. 하지만 근무 당시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A씨 소속사인 하청업체가 2016년 미국 반도체 회사에 매각돼 입증할 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A씨 진술과 역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따질 수밖에 없었다.
A씨 진술과 역학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근무형태와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하루 8시간씩 1주에 6일간 3조3교대로 일했다. 근무시간 내내 거의 서서 일했고, 식사시간 약 20분을 제외하면 휴식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작업장 환경도 좋지 않았다. 조별로 2명의 직원이 노광기를 이용해 작업했는데, 노광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노광-세척-재노광’ 작업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세척액이 방진복이나 장갑에 묻는 경우가 빈번했다. 세척할 경우 하루에 길게는 1시간 이상 클린룸에 머물렀다. 공장이 오픈돼 있어 세척공정의 시큼한 냄새가 노광공정에도 전달됐다.
유해물질 차단 방호복 착용 못 해
법원 “고농도 화학물질 노출 의심”
사측은 유해물질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회사 관계자에게 취급물질의 유해성과 위험요인에 대한 어떠한 정보조차 제공받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작업 장비와 취급물질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적 소견은 엇갈렸다. A씨 주치의는 “상당한 기간의 노출이 있어야 파킨슨병의 발병원인으로 작용하는데, 복합 유기용제 노출이 원인이 됐다는 의학적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법원 감정의 또한 A씨가 매우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에 걸렸고, 방호복을 입어 노출량이 많지 않다고 봤다. 반면 A씨 자문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높은 농도로 2년3개월간 휴무일 없이 노출됐다”며 업무 연관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공단의 판정을 뒤집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유기용제 노출이 파킨슨병 발병과 관련성이 크다고 봤다. 재판부는 “노출수준이 상당히 높고, 간헐적으로 고농도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안전보건공단의 역학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공단은 모든 공정이 한 공간에 이뤄져 화학물질이 생산공정 내로 재유입될 가능성이 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생산공장 클린룸의 작업환경이 열악했다는 사실도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A씨가 클린룸의 오염을 막기 위한 목적의 보호장구만을 착용한 상태로 일해 유해물질 노출이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3조3교대로 근무시간이 길었던 점도 고려됐다.
아울러 의학적·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의 파킨슨병은 희귀질환으로 발병 사례가 많지 않고 역학적 연구가 수행되기 어려워 발병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라며 “의학적·과학적 증명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박다혜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법원이 전자산업의 업무상질병 판정에 대한 대법원 판례 취지를 적용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근로복지공단이 놓친 역학조사 결과와 A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포토공정의 유해성과 노출 정도가 인정됐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