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출장 중 유해물질 노출로 기저질환 악화, 법원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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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2-04-05 10:13화학공장이 밀집한 공단에서 근무하면서 폐질환이 악화해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한 엔지니어가 항소심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공사기간 단축 압박으로 인한 과로와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근무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존 폐질환이 급격하게 악화했다고 판단했다.
기존 폐질환 악화로 피 토하고 숨져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이원형 부장판사)는 D산업 과장 A씨(사망 당시 37세)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유족의 청구를 인용했다.
A씨는 2016년 울산 온산공단에 파견돼 약 두 달간 근무했다. 그는 정유회사인 S사의 석유화학·정유공장을 증설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S사는 생산시설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 ‘온산공장 시설개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파견 당시 A씨는 발주자인 S사의 ‘공기단축’ 압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S사는 2016년 11월까지 프로젝트를 완료할 것을 목표로 ‘계획기간 내 완성’을 요구했다.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손해배상과 공사지연금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A씨는 매일 발주자에게 진행 경과를 보고했다.
이로 인해 A씨는 2개월 파견 기간에 7일밖에 쉬지 못했다. 1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약 64시간이었고, 7주차에는 주당 근로시간이 78시간을 넘기기도 했다. 파견 전 4주간 주당 평균 근무시간(44시간)보다 1.5배가량 더 일한 셈이다.
공단 근무환경은 열악했다. A씨는 유해가스·쇳가루 분진·매연 등에 노출됐다. 사무실도 유해물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루 4시간 이상 현장근무를 마치면 밀폐된 ‘컨트롤룸’에서 근무했다. 게다가 A씨는 방음이 되지 않는 9제곱미터(2.7평) 면적의 숙소에서 지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강 상태는 악화했다. 파견이 끝나고 기존에 앓았던 급성 기관지염과 폐렴 등이 악화해 세 차례에 걸쳐 휴가를 내 2주간 입원 치료를 받고, 한 달간 병가를 썼다. 하지만 회사의 경영사정 악화로 인력이 부족해 복귀한 이후 곧바로 업무에 투입됐다.
결국 A씨는 2017년 3월 사무실에서 피를 쏟으며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 이송됐지만 1달여 만에 ‘급성호흡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2심 “업무부담과 스트레스 요인”
“계획 내 완공 요구에 정신적 부담감 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무관한 비결핵항산균으로 인한 폐질환으로 숨졌다”며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지 않았다. 유족은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보고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과거 호흡기 질환으로 진료를 받고, 비활동성 결핵 진단을 받은 점을 근거로 들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망인은 쉽게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폐질환이 자연속도 이상으로 급속히 악화해 다량의 객혈을 하게 되고 호흡을 악화시켜 심정지가 와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시했다. 온산공단의 유해물질이 14가지나 된다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의 작업환경측정 결과도 뒷받침됐다.
업무부담으로 체중 감소가 심해 과로할 때 출혈 위험이 크다는 주치의 소견도 제시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치료를 받느라 휴가를 모두 소진하고, 규정에 따라 병가를 더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견 이후 급격한 폐 손상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진료기록 감정의가 제시한 영상사진과 관련해서도 “파견 이전에 촬영된 사진”이라고 일축했다. 나아가 “프로젝트 기한을 지키지 못할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돼 망인으로서는 정신적 부담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과중한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공단은 2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