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대법원 “3자에 의한 산재, 노동자 과실은 공단이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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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2-03-25 09:33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었을 경우 손해를 보상받지 못한 노동자의 과실 부분은 근로복지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에게 보험급여를 대신 지급해 준 뒤 사용자에게 구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범위는 노동자의 과실에 따른 금액을 제외한 액수만 가능하다고 봤다. 만약 노동자의 과실까지 공단이 산재책임이 있는 기업에 요구한다면 본래 공단이 부담할 부분을 재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취지다.
기존 대법원 “손해액 전부 구상 가능”
하급심, 종전 ‘과실상계 후 공제’ 적용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24일 근로복지공단이 한국전력공사와 전기업체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전봇대를 옮기는 공사 중 노동자가 숨지며 시작됐다. 한전으로부터 배전공사를 도급받은 A사 직원들은 2017년 5월 강원 평창군에서 전봇대를 이설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전봇대 이설 전 광케이블을 철거하던 통신업체의 작업팀장이 전봇대의 본주와 지주 사이를 연결하는 ‘지주밴드’가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직원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통신업체 소속 B씨는 이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채 이동하던 중 넘어진 전봇대에 머리를 맞아 나흘 만에 뇌부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공단은 B씨 사망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라 유족에게 요양급여(700만원)·장의비(1천450만원)·유족연금(1억9천만원)을 사용자를 대신해 지급했다. 이후 B씨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해 한전과 A사를 상대로 2020년 4월 보험급여액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산재보험법(87조)은 공단이 제3자의 행위로 재해급여를 지급했을 경우 그 금액 내에서 받은 사람을 대신해 제3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1심은 한전과 A사의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70%로 제한했다. 광케이블 철거작업 이후 지주밴드를 철거하지 않았고, 사전에 철거하더라도 지주를 지탱하게 하는 적절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피고들의 책임비율을 85%로 보면서도 통신업체의 과실비율도 30%로 인정했다. 광케이블 철거 전에 A사에 작업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전합 “재해자 과실비율 빼고 청구 가능”
“본래 공단 부담할 부분 재해자에 전가”
상고심에서는 공단의 구상금 청구 범위가 쟁점이 됐다. 구체적으로 △손해액을 과실상계한 뒤 공단이 지급한 보험급여를 전부 공제할 것인지(과실상계 후 공제) △손해액에서 보험급여를 공제한 다음 과실상계(공제 후 과실상계)할 것인지가 다퉈졌다.
예컨대 종전 판례 입장인 ‘과실상계 후 공제’ 방식을 적용하면 공단의 구상금 청구 범위는 ‘보험급여 전액’이 된다. 반면 ‘공제 후 과실상계’를 따르면 ‘보험급여 중 재해자의 과실 비율을 제외한 금액’을 구상할 수 있다.
대법원은 ‘공제 후 과실상계’ 법리를 적용해 재해자의 과실 비율은 공단이 부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의 연혁·입법 목적 및 산재보험제도의 법적 성격을 고려하면 재해근로자의 손해가 전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공단이 부담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산재가 제3자의 불법행위와 재해근로자의 과실이 경합해 발생했다고 해서 공단이 보험급여 중 재해자의 과실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제3자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의 대위 행사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는 재해자를 위해 본래 공단이 부담했어야 할 부분을 재해자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로 보험급여 전액을 구상할 수 있다고 판시한 종전의 판결들은 모두 변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