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죽음의 곡예운전 반복하나”] 우정사업본부, 집배원에 토요일 ‘강제근로’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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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2-06-17 09:30고양일산우체국에서 일하는 14년차 집배원 오현암(42)씨는 이번주 토요일부터 시작될 ‘곡예운전’ 때문에 벌써부터 걱정이 많다. 소포위탁배달원들이 18일 경고파업을 예고하면서 우정사업본부가 집배원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파업 기간에는 소포위탁배달원의 물량이 집배원에게 밀려드는데, 작은 이륜차에 부피가 큰 택배를 싣고 달리면 앞바퀴가 들리는 ‘곡예운전’을 하게 된다. 오씨는 “우정사업본부는 택배노조 우체국본부의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우리를 방패막이나 희생양으로 쓰고 있다”며 “집배원을 마치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륜차에 부피 큰 택배 싣고 달리는 집배노동자
전국택배노조 우체국본부가 18일 경고파업을 예고하자 우정사업본부가 집배원에게 토요일인 파업일 강제근로를 명령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위원장 최승묵)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정사업본부는 쟁의행위가 있을 때마다 집배원을 대체인력으로 활용해 과중노동·강제근로를 지시해 왔다”며 “대체근무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파업이 진행되면 우체국 집배원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추가로 배달해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소포위탁배달원과 위·수탁 재계약 추진 과정에서 노사 이견이 발생해 택배노조 우체국본부가 파업을 선언하자 집배원을 토요일 대체인력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오씨는 “재작년 택배노동자들이 한참 크게 파업을 할 때도 부피가 큰 물량들이 와서 오토바이를 눕혀 놓고 택배 물품을 겨우 빼내거나 오토바이에 (평소에는 쓰지 않는) 고무줄로 택배 물품을 연결해 배달한 경험도 있다”며 “죽음의 곡예운전을 올해도 시작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집배원들은 평소 이륜차로 감당할 정도로 작은 부피의 택배만을 배달하는데, 대체인력으로 투입되는 경우 이륜차에 싣기 버거운 큰 부피의 택배 물량을 떠맡게 된다는 것이다. 오씨는 “우정사업본부가 파업 때 바로 (택배) 접수 중지를 하면 되는데 이에 대해 굉장히 미온적”이라며 “적극적으로 택배 접수를 중지하지 않아 집배원들이 업무를 떠맡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강제노동·직권남용 혐의로 관서장 고발할 것”
민주우체국본부는 우정사업본부의 방침이 단체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한다. 우정 노사 단체협약 116조에는 “사용자는 연장·야간·휴일근무를 시키고자 할 때에는 조합원 동의 및 교섭대표노조와 사전 협의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원 판례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행정법원은 사전 동의 없이 연장근무 지시를 거부한 우체국 노동자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위반으로 징계한 우정사업본부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민주우체국본부는 우정사업본부에 △파업 구역 소포 물량 접수를 즉시 중지할 것 △파업이 진행되는 구역에 토요배달이 불가함을 공지할 것 △택배 물량 배달을 지시할 경우 직전 달 평균 물량을 산정해 배정할 것 △토요근무 명령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토요일 강제근로 명령이 시행될 경우 모든 우체국장들을 강제노동·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최승묵 위원장은 “국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에서 노동자를 파업의 길로 나서게끔 밀어붙여 놓고 그 물량을 불법 대체인력에 떠안겨 집배노동자를 사지로 몰고 있다”며 “과도한 노동을 강제하는 우정사업본부에 맞서겠다”고 말했다. 민주우체국본부는 이달 24일 간부상경투쟁과 다음달 23일 전국 조합원 상경투쟁을 예고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집배원과 소포위탁배달원은 상호보완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물류지원단의 원청격인 만큼 소포배달 업무의 공백 방지를 위해 집배원을 통해 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교섭대표노조인 우정노조와 협의한 사항으로, 집배원은 국가공무원복무규정에 따라서 공무 수행을 위해 (근로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근무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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