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잘못된 수혈로 간암 걸린 소방관, 37년 만에 ‘위험직무순직’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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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1-10-14 09:29소방관이 화재진압 과정에서 다쳐 B형 간염 보균자로부터 수혈받은 뒤 간암에 걸려 치료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더라도, 현장에서 입은 부상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법조계는 현장 부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정해 공무상 재해로 판단한 만큼 유사 공무원 사고에 대해서도 선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순직한 소방관 A씨의 아내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청구 부지급결정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공무원 재해 인정받자 유족급여 신청
사건은 3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광역시 동부소방서 소속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A씨는 1984년 11월께 화재를 진압하던 중 전기에 감전돼 쓰러지면서 유리 파편에 우측대퇴부가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피를 많이 흘린 A씨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고 동료인 B씨의 혈액을 수혈했다. 그런데 이후 B씨가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였던 사실이 밝혀졌다. B씨는 2000년 간암을 진단받은 뒤 3년여 만에 사망했다.
B씨의 혈액을 수혈한 A씨도 2011년 B형 간염·간경변·간암을 진단받았다. 그는 증상이 악화돼 2013년 6월 퇴직했다. 이후 치료를 받았지만 극심한 정신적 불안상태를 겪었고 2013년 6월 자신의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 아내는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유족보상금 지급 청구를 했지만 거부당하자 행정소송을 내 2018년 1심에서 원고 승소가 확정됐다. 당시 법원은 “A씨의 사망과 공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공무상 재해라고 인정했다.
이후 A씨 아내는 2019년 5월 인사혁신처에 “A씨는 순직을 넘어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를 청구했으나 거부되자 소송을 냈다. 유족은 “A씨는 소방공무원으로서 재난·재해 현장에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화재진압을 하다가 부상 및 질병을 입게 됐고,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법원 “위험직무수행 중 입은 ‘위해’ 원인으로 사망”
1심은 “위험직무수행 중 입은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A씨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해 자살한 데에는 간암 발병 및 치료경과가 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간암에 걸린 후 극심한 심신의 고통을 받다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A씨를 자살에 이르게 할 만한 다른 사정도 보이지 않는 점을 보면, A씨의 자살은 간암이 주된 원인이 됐다 할 것이어서 결국 위험직무수행 중 입은 위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1심은 위험직무 수행 중 입게 된 신체 부상을 치료하는 것은 위험직무 정리행위의 일환으로 ‘부수활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역시 1심과 동일한 결론을 내리자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월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도 “위험직무 수행 중 입은 위해가 직접적인 주된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본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수술 과정 및 감염, 간암 발병, 사망 경과에 비춰 A씨는 결국 화재진압 중 입은 부상이 직접적인 주된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볼 수 있다”며 “공무원 재해보상법상의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A씨 아내를 대리한 임영택 변호사(법무법인 늘품)는 “대법원이 ‘현장성’을 인정한 것으로서 가치가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임 변호사는 “소방관이 현장에서 벗어나 치료를 받던 중 의사의 잘못으로 사망한 사건이지만, 법원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이라며 “현장을 벗어나 사망했더라도 위험직무순직을 인정한 만큼 앞으로 수혜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