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상 재정 악화 때문에 저희가 해고된 것이라면, 1만명 넘는 동방항공의 중국인과 외국인 승무원 중에 왜 한국인 승무원만, 그것도 14기만 전원 해고된 건지 의문입니다. 저희는 지금도 간절히 비행하길 원합니다. 부디 법원에서 공정한 판결을 내려 힘없는 계약직 승무원을 보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국 2위 규모의 항공사인 동방항공에서 해고된 한국인 승무원 A씨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김명수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해고무효확인 소송의 마지막 재판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최후진술문을 읽어 내려갔다. A씨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던 중국 국내까지 비행하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회사가 시키는 대로 모두 따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는 발언 내내 울먹였고 이내 동료 승무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재판이 끝난 뒤 A씨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그는 “안 울려고 했는데 순간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승무원들이 비행기 대신 법정에 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직후 기간제 한국승무원 73명 전원 계약종료
해고 승무원 우울증 등 후유증 경험, 재취업도 어려워

동방항공의 한국승무원 집단해고는 코로나19 사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방항공은 지난해 3월9일 2년 계약으로 채용한 한국 국적 기간제 승무원 14기 73명 전원에게 3월11일자로 계약 종료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계약 만료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사측은 항공시장 전반의 변화로 회사 경영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해고 사유로 들었다.

14기 승무원은 2018년 3월12일 2년 기간제 근로계약을 맺고 입사했다. 2019년 12월 말 기준으로 한국인 승무원은 211명이었는데, 이 중 14기를 제외한 선배 기수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된 상태였다. 14기가 마지막 기간제 한국인 승무원이었던 셈이다.

계약 종료 이후 이들은 퇴직금 100%를 줄 테니 이의제기하지 않는다는 서명을 요구당한 뒤 일방적으로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갑자기 일터를 잃은 20대 승무원들은 대부분 우울증·불면증·대인기피증 등을 겪었다. 당시 이들은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심리치료를 받았다.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적금을 해지하거나 결혼계획까지 무산된 승무원도 있었다. 새로운 진로를 찾지 못해 73명 중 절반 이상은 현재 아르바이트 등 단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고, 18명은 수입이 없는 상태다.

이들은 지난해 4월 “회사가 일률적으로 계약갱신을 거절한 것에 대한 객관적·합리적·공정한 사유가 없다”며 소송을 냈다. 해고된 승무원 73명 중 3명은 소송을 포기했다. 승무원측은 “최초 근로계약기간 종료 이후 정규직 근로자로서 계약갱신에 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는데도 합리적 이유 없이 거절됐다”며 부당해고를 주장했다. 특히 △근로기간 2년 중 6개월 이상 교육·훈련을 받은 점 △2019년 5월11일 근로계약서를 재서명하면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기간’이 명시된 점 △지난해 정기 교육훈련 등 계속근로를 전제로 지시를 내린 점 등을 볼 때 ‘정규직 전환 기대권’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사측은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시장 위축이 갱신 거절 사유가 된다며 갱신기대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한-중 노선 종사를 목적으로 승무원을 채용했는데, 한-중 노선 축소로 인해 정규직 한국인 승무원 숫자가 지나치게 많게 되고, 중국 국내선으로 전환배치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동방항공 “코로나19로 재정악화, 갱신 거절은 고육지책”
승무원측 “계약 거절 회피나 최소화 노력 없었다”

지난 14일 마지막 변론기일에서도 사측은 경영상 필요에 따른 조치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20여명의 해고 승무원이 법정에 직접 출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A씨의 최후진술이 끝나자마자 사측 대리인은 “재정상황 악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계약갱신 거절이 가능하다는 명문의 규정이 있다”며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인해 회사가 안타깝게 고육지책으로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승무원들을 대리한 최종연 변호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재판 이후 “특정 입사 기수를 일괄적으로 갱신 거절한 합리적인 사유가 인정되려면 거절의 회피 또는 최소화 노력과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도 인정돼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동방항공의 사업 규모나 여력·거절 경위를 보면 합리적 사유를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무리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대미문의 항공산업 위축이 있더라도 사용자는 계약갱신 거절의 합리성을 갖추기 위해 충분히 노력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동방항공은 올해 중국 3대 항공사 중 매출이 가장 많이 늘어났다. 지난달 중국 한 매체에 따르면 동방항공의 상반기 매출액은 347억1천만위안(약 6조3천855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38% 증가했다. 1심 선고는 내년 1월13일 내려질 예정이다.

동방항공 해고와 관련해 고용유지지원금 논란도 일고 있다. 17일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동방항공은 해고한 14기 승무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정규직 한국인 승무원들도 비행에 투입하지 않으면서 고용유지지원금만 받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2월 한국인 승무원을 상대로 유급휴직동의서를 제출받기도 했다. 정일영 의원은 “외항사에 대한 고용유지지원금은 우리 근로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 지원되고 있지만, 동방항공 사례에서 보듯 고용유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