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임금 및 단체협상 잠정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잠정 합의안이 통과되면 현대차 노사는 3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하게 된다. 노조 측에서 주요 요구안으로 내세웠던 정년연장은 관철되지 못했지만 임금성 부분은 사측이 처음 제시했던 안보다 진전이 있었다. 완성차 업계 교섭의 바로미터인 현대차 임단협 결과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21일 노동계 등에 따르면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지부)와 현대차는 전날 오후 진행된 17차 교섭에서 2021년 임단협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현대차지부는 교섭 초반 기본급 9만9000원 인상과 1000만 원 수준 성과급과 격려금, 신산업 미래협약 체결,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년연장 등을 핵심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임금 동결에 합의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회사 측은 기본급 5만 원 인상과 성과급 100%에 300만 원 추가 지급, 품질향상격려금 200만 원 등을 제시했다. 

현대차지부는 결렬을 선언했고 조합원 총투표와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교섭 재개를 요청했고 지난 14일 14차 교섭이 시작됐다. 현대차는 이틀 뒤인 16일 16차 교섭에서 2차 제시안으로 기본급 5만9000원 인상, 성과급 125%에 350만 원, 품질향상격려금 200만 원을 제시했다. 또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특별합의로 주식을 5주씩 지급하고 특별 주간 연속 2교대 포인트로 10만 포인트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는 1차 제시안보다 진전된 안이었지만 미래협약과 정년연장에 대한 추가 제시안이 없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사는 전날 진행된 17차 교섭에서 접점을 찾았다. 기본급은 호봉 승급분을 포함해 7만5000원 인상하고 성과급은 200%에 350만 원이다. 여기에 품질향상 및 재해예방 격려금 230만 원과 미래 경쟁력 확보 특별합의로 주식을 5주씩 지급한다. 특별 주간 연속 2교대 포인트는 총 20만 포인트와 재래시장 상품권 10만 원도 지급된다. 우리사주 개인출연 이자제도도 신설한다. 

미래협약에 대해서도 합의가 이뤄졌다. 지부는 자세한 문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대차가 2025전략에서 투자하기로 한 60조1000억 원을 국내 공장 투자로 끌어냈다고 했다. 

주요 요구안 중 하나였던 정년연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현대차지부는 정년과 장기근속자 우대에 관한 합의는 있었다고 설명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시니어촉탁제는 폐지되고 숙련재고용 제도가 전 직군에 도입된다. 또 퇴직 인원을 대상으로 결원 대체 인력풀을 운영해 긴급 상황에 대응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MZㆍ사무연구직 잡았다...장해자 대체 채용도 합의 

현대차지부가 이번 임단협에서 사무연구직 노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관측도 나온다. 합의안이는 젊은 세대와 일반직, 연구직을 위한 임단협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 5월 현대자동차그룹에 사무연구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전 그룹사를 포괄하는 노동조합으로 각 계열사별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은 MZ세대가 중심이 됐다는 것과 그동안 노조 무풍지대였던 사무연구직이 주축이 됐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았다. 

지부에 따르면 노사는 경조금 지급 기준이었던 근속 연한을 폐지했다. 경조금도 대폭 인상했다. 본인이 결혼할 경우 30만 원이나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재혼할 경우 15만 원이나 25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출산할 경우 1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MZ세대를 위해 1인 1실 기숙사를 신규로 건립한다는 내용도 있다. 입사 1년 이후에는 누구나 첫 차를 구입할 때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학자금 대출 입자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일반직과 연구직을 위해서는 시간 외 수당 제도를 개선했다. 기존에는 시간 외 수당이 포괄임금으로 지급됐지만 합의안에서는 초과연장근로수당을 따로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에 지급되던 시간 외 수당은 그대로 유지되고 월 15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할 경우 초과연장근로수당이 지급된다. 1년이 경과된 후에는 월 10시간 이상 초과분에 대해 수당이 지급된다.  

부품협력사를 위한 내용도 눈에 띈다. 현대차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부품협력사 지원을 위해 1200억 원 상당의 기금을 출연하는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산업 재해로 장애를 얻을 경우 그 자녀를 대체 채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기존에는 산재 사망자 유족을 대체 채용하는 단체협약만 존재했다. 이 제도가 민법상 사회질서를 위반하는 고용세습 조항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지난 8월 대법원은 산재사망자 유족 대체 채용 제도는 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누적된 산재사망자 유족을 기술직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더 나아가 중증 장해자 자녀도 대체 채용한다. 

다만 올해 교섭 이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1급에서 6급 장해자가 해당되고 교섭 이후에는 4급 이상 장해자에게만 적용된다. 

현대차지부는 이날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잠정합의안 설명회를 열고 이달 27일에는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찬반 투표에서 잠정 합의안이 가결되면 현대차 노사는 3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하게 된다. 

3년 연속 무분규,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까 

전문가들은 3년 연속 무분규 타결이 가시화 된 점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자동차 생산이 어려웠고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문제가 횡행하고 있지만 3, 4분기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이라며 "좋은 신차도 많이 나와서 해외 수출이 활성화 될 시기이기 때문에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하는 시기인데 3년째 무분규라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사측이 상당히 협조적으로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잘 파악을 한 것 같다"며 "위기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노사가 중지를 모았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년연장의 경우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요구였다고 입을 모았다. 

김 교수는 "정년연장은 퇴직금부터 모든 게 결정되기 때문에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젊은층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형평성 문제도 있고 노노 갈등도 커질 수 있어 함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인센티브는 단기적인 요구지만 정년연장은 한 번 결정되면 그 이후에 모든 이들이 다 해당되는 장기적인 요구"라며 "정년연장은 임금피크제와 같이 가야 하는데 노조에서 임금피크제에 대한 전향적인 결정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한편, 현대차가 국내 완성차 업계에서 처음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만큼 어떤 효과를 불러올지 관심이 쏠린다. 

김 교수는 현대차 무분규 타결이 현대차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현대차는 국내 기업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샘플 모델"이라며 "무분규 타결됐다는 건 다른 기업 노사 양측에도 부담을 주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무분규 임단협 타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다른 자동차 제작사 중에는 힘든 회사들이 많아 무분규로 못 가고 있다"며 "(무분규 영향이) 확산이 돼야 할 텐데 회사도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잘 되는 집은 양보해서 더 큰걸 얻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되는 것"이라며 "노조 측에서는 불만스럽겠지만 장기적으로 보고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는 무분규로 가주는 게 공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차 무분규 타결을 한국지엠이나 르노삼성에서 반면교사로 삼아 빠른 타결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처: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https://www.worklaw.co.kr/view/view.asp?in_cate=104&in_cate2=1011&bi_pidx=326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