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IT업계, 권위주의를 버려야 산다
페이지 정보
대상노무법인 21-06-14 17:46IT업계, 또 다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다
올 초 직장인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이슈는 바로 IT업계의 프로그래머 영입과 연봉 인상 경쟁이었다. 800만원 연봉 인상을 특정 기업이 외치자 곧바로 900만원 더 나아가 1300만원 일괄 인상을 주장하던 기업들의 발표에 'IT업계는 역시 사이다'라는 반응이 직장인들로부터 쏟아졌다. 이에 따라 국내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게도 프로그램 기초를 필수로 가르치는 것이 유행처럼 확산됐다.
대중에게 IT업계는 늘 유연성, 자율성, 수평적 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대기업의 CEO나 경영진과 달리 IT업계 경영자는 방송과 대중매체에서 소탈함, 탈권위주의를 보여주었고 플랙서블 타임제 등 유연근무의 일상을 보여주며 많은 취업준비생들의 호평을 받았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취업준비생들의 입사선호 기업은 삼성전자, CJ 등 대기업에서 네이버, 카카오 등 혁신적 IT기업으로 변화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 가장 탈권위주의에 가깝다고 알려진 IT업계에서 또 다시 권위주의에 의한 병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성과만 강조하고 장시간 노동을 묵인한다는 기사부터 네이버에 재직 중인 임원이 임직원에게 폭언 등 갑질을 벌였다는 보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IT업계가 정말 수평적이었는가라는 의문이 따를 만큼 연일 제기된 IT업계의 갑질, 성과주의 병폐는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권위주의와 성과주의에 익숙해진 IT업계
놀라운 반응은 취업준비생을 중심으로 대중은 IT업계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 경악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IT업계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은 "터질게 결국 또 다시 터졌다"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블라인드 등 직장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앱에서도 관련업계 임직원들은 충격적인 반응보다 여전히 변하지 않고 겉으로만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주장하는 경영진들의 모습에 대해 한숨을 토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IT업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필자에게는 방송사, 언론사 등에서 수많은 인터뷰 요청이 오는 편이다. 7년 전부터 꾸준히 IT업계 조직문화 개선의 필요성, 경영진의 탈권위주의 내실화를 강조해왔고 겉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업계는 가장 권위주의가 만연된 업종 중의 하나라는 점을 피력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또 다시 문제가 불거진 이후 왜 IT기업들이 변화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묻는 인터뷰 요청이 많았다.
IT업계는 성과주의와 권위주위에 이미 익숙해진 곳이다. 문제는 경영자 개인의 측면과 업계의 구조적 측면으로 나누어 해석할 수 있다. IT업계의 역사는 30년이 안될 정도로 국내에서 업력이 매우 짧다. 1990년대 정보기술의 붐을 타고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벤처창업을 장려하면서 수많은 검색포털, 게임,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등장했다. 당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창업한 젊은 IT 기업가들은 이제 50대 초중반이 됐다.
20대 후반~30대 초반, 불확실성에 과감히 도전해 국내 IT업계의 붐을 주도한 이들의 경영자적 역량은 높이 인정해야 한다. 이들로 인해 검색, 게임, 콘텐츠, 소프트웨어 등이 호황을 이루었고 혁신의 또 다른 축이 수립됐다. 다만, 기업의 고속성장 속도를 경영자가 리더십의 숙련도 차원에서 학습하며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2030세대 때 기업가가 된 이들은 30년 가까이 IT업계의 제왕이 돼 군림하기 시작했다.
국내외 거의 모든 기업에서는 직급⋅직책 등에서 승진한 이를 대상으로 리더십 교육을 필수로 진행한다. 직무역량과 달리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십 역량은 직급 또는 직책이 올라갈수록 끊임없이 함양하고 경험을 통해 올바르게 쌓아 올려야 한다. 기업가정신이 탁월하다고 해서 리더십까지 탁월할 수는 없다. 기업가정신으로 시장 기회를 창출하는 것과 구성원들을 슬기롭게 이끄는 리더십은 완전히 그 성격이 다르다.
문제는 IT업계 경영자들이 20~30년 전 창업을 하며 당시 호형호제했던 멤버들과 지금도 업계를 좌우하다 보니 구성원을 지혜롭게 이끄는 리더십 역량을 쌓지 못했다는 데 있다. 물론, 임직원들로부터 360도 피드백을 받지 않았고 멘토를 통해 부족한 리더십을 교육받지 못했으니 이 문제는 지금의 권위주의 발현이라는 문제로 직결된다. 겉으로는 수평적 소통을 강조하지만 속에서는 권위주의가 내재화된 것이다.
권위주의가 IT업계 일부 경영진들의 개인적 특성에서 비롯된다면 성과주의는 업계의 구조적 특성과 연결된다. 실제 국내 IT업계 종사자 중 33%는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지금도 경험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율과 책임'이 국내 IT업계에서는 '무한경쟁과 성과주의'로 해석되다 보니 임직원들의 장시간 노동은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속도경쟁에서 밀리면 안 되기에 성과를 한층 더 강조하는 형국이 됐다.
IT업계는 엔터테인먼트 및 광고, 패션산업보다 트렌드가 더 빨리 전개되는 곳이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 등은 이미 기존의 핵심역량 이외 문화콘텐츠, 플랫폼 서비스, 메타버스 등 새로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속도경쟁이 만연하다 보니 이 승부에서 앞서기 위해 IT기업들은 회사 내부에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에 가동하며 자사의 킬러 콘텐츠를 준비한다.
프로젝트 단위의 소규모 팀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기에 팀 리더에게 권한이 역설적으로 모두 집중되는 수직적 소통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회사의 판단 및 내⋅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이른바 프로젝트 드롭(Project Drop)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프로젝트에 따른 구성원들의 이직도 잦고 이러한 문제에 비판 의견을 제시하는 기회도 없기에 IT업계는 권위주의, 성과주의에 조용히 젖어들었다.
IT업계, 권위주의를 버려야 살 수 있다
IT업계의 경영자들이 1990년대 후반 창업했을 때 이들이 권위적 조직을 지향했으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성과주의와 속도경쟁이 자연스러운 업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어느새 권위주의와 성과주의, 임직원 통제와 관리에만 익숙한 수직적 조직으로 변화된 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수평적 조직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직적 체계를 유지하면 앞으로 IT업계의 성장을 기대하긴 어렵다.
MZ세대는 지금까지 보여준 IT업계의 권위주의 특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을 업계 경영진은 깨달아야 한다. 이들은 권위주의를 혐오하며 불합리한 성과주의와 일과 삶의 균형을 해치는 무분별한 야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특히, MZ세대는 말과 행동이 다른 언행 불일치 태도를 강력히 비판한다. IT기업들이 말 뿐인 수평적 조직을 행동으로 옮기며 권위를 내려놓아야 미래 세대로부터 그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출처: 월간노동법률 권상집 교수 https://www.worklaw.co.kr/view/view.asp?in_cate=119&in_cate2=0&bi_pidx=32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