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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2500명, 제 발로 은행 떠났다...희망퇴직 이면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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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노무법인  21-03-04 10:37 

한 은행 지점에 손님 10명이 앉아있다. 이 중 한명은 신규 상담이나 상품 가입을 위해, 9명은 단순 입출금 업무나 송금 업무를 위해 방문했다. 은행원 한명이 운 좋게 신규 고객을 맡아 1시간 상품을 설명하고 실적을 냈다. 같은 시간동안 다른 직원들은 단순 업무 고객 9명을 상대했다.

지점에서는 매일이 실적 평가 날이다. 아침에 출근한 직원들은 으레 한 곳에 모인다. 이름이 순서대로 호명되면서 전날 실적을 공개한다. 결국 박수 받는 건 고객 1명을 상대한 직원이다. 9명을 상대했지만 실적을 내지 못한 직원들은 눈총을 감내해야 한다. 결국 직원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유대관계보다 경쟁의식이 자리잡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후 다가온 위기 중 하나는 '고용 불안'이었다. 직장인 사이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퇴사는 참자'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이 시국에 괜히 회사를 나갔다가 기약 없는 구직자 신세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주요 시중은행(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농협은행)에서는 2,500여명이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자진해서 회사를 나갔다는 것이다. 전년도 희망퇴직 규모는 1700여명이었지만 올해는 약 800명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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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자가 증가한 주요 원인은 희망퇴직 대상자가 확대됐고 보상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964년생부터 1967년생까지였던 희망퇴직 대상자를 1965생부터 1973년생까지로 확대했다. 여기에 재취업지원금으로 600만원을 더 지급했다. 농협은행과 하나은행도 희망퇴직 보상금을 상향했다. 유일하게 전년에 비해 희망퇴직자가 증가하지 않은 신한은행은 전년과 비슷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적 요인은 희망퇴직 증가의 간접적인 원인이 될 순 있어도 직접적 요인은 따로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일영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부위원장은 "업무 강도와 실적 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회사가 희망퇴직이라는 당근을 줬을 뿐"이라며 "퇴직금이나 퇴직대상자 증가는 단순히 희망퇴직과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선 희망퇴직으로 얻는 이익이 안정적으로 정년까지 근속했을 때 얻는 이익에 비해 크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희망퇴직으로 은행을 떠나는 연령대는 50대 중반이지만 국민연금 수급 연령은 만 65세다. 약 10년 정도 소득 절벽 구간이 발생하게 된다. 희망퇴직금으로 고정 소득을 창출해야 하지만 불확실성이 따른다. 특히 코로나19로 자영업은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또 금융권은 이직률이 제로에 가깝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은행 내 성과압박은 치열하다. 그중에서도 지점장은 성과에 따라 직접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지점이 일정 순위 이하로 떨어지면 말 그대로 '집'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지점 실적도 매일 갱신돼 전산망에 뜬다. 지점장은 하루하루 등수를 확인하며 직원들을 압박하는 구조다. 김 부위원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과 압박은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심하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성과 압박을 주는 지점장이 이해는 간다"는 입장이다.

은행 산업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정해진 시장 안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 실적 압박이 직원들에게 오롯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희망퇴직 대상자를 확대하고 보상을 높이자 더 많은 직원이 희망퇴직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퇴직 기간이 한 달 정도 지나면 사내게시판에 매년 똑같은 글이 올라온다. '퇴직 다시 안하냐'는 내용"이라며 "다들 퇴직 신청 기간에 그만둘까 고민하다가 남아있기로 했는데 막상 일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서 퇴직을 고민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불가피하다는 인원감축, 대안 없나
은행이 경제적 요인을 제시하며 희망퇴직을 늘리는 이유는 고정비를 절감하기 위함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12월에 발간한 금융브리프에 따르면 2019년 말 일반은행 기준으로 국내은행 판관비에서 인건비 비중은 64%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우진 선임연구위원은 "이러한 높은 인건비 비중이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주범으로 인식돼 은행 경영진으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인력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항아리식 인력구조도 인력구조조정 원인 중 하나다. 보고서는 "(국내 은행은) 정규직원 중 책임자수는 증가하고 은행원 수는 감소하는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시현하고 있다"며 "은행의 인력구조가 현재의 추세대로 유지될 경우 생산성에 부응하지 못하는 고령 인력의 양산과 이에 따른 조기퇴직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보고서는 몇 가지 인력운용 방안을 제시한다. ▲정년이 보장되고 노조가입이 자유롭지만 승진 등에 제한이 있는 직군과 선진 외국 금융회사의 채용-경력관리-평가 및 보상과 일치하는 직군으로 인력을 분리 운용하는 방안과 ▲노동유연성 확보를 위해 종업원 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방안 등이다.

전자의 경우 시중은행에서 '창구전담직원'이라는 유형으로 이미 시행된 바 있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과의 차별, 경력 인정 등 문제가 불거져 노조와 회사 간 갈등이 나오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이 문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KB국민은행 노사는 지난해 임단협에서 창구전담직원 처우개선을 위한 인사제도 태스크포스를 꾸리기로 협의했다.

후자는 종업원들이 별도의 회사에서 은행업무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퇴직자 지원제도의 일환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자발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유도할 수 있다.

은행의 인력 감축은 불가피하다. 김 부위원장 역시 이에 동의한다. 다만 고정비 감축을 위해 인력을 감축하는 건 근시안적인 사고라는 입장이다. 그는 "인건비를 줄여서 이익을 늘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은행산업 자체가 위기고 장기적으로 보면 산업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도 직원들에게 이익만 같이 내자고 할 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갖고 직원들과 함께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정근 금융노조 부위원장도 "은행은 공공성을 가진 산업인데 조직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며 "디지털 전환을 위해 퇴직을 늘리고 IT인력을 새로 채용하고 있는데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도 생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출처: 월간노동법률 이지예 기자 https://www.worklaw.co.kr/view/view.asp?in_cate=104&in_cate2=1011&bi_pidx=3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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